선행이 충분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가져다주는 작업들은 인간의 설계로만 잉태으로써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정지으신(사전 계획) 선행'이다.

글: LLOYD I. CASTRO

(번역: FREDERICK TALAGTAG)

지옥에서의 영원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천국의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덕의 특성을 얻고 좋은 작업들을 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게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교회 교인이 되는 것을 반드시 해야 할 선행 중 하나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는 그들은 이미 교회에 속해 있다면, 모든 교회나 종교가 신에게 소속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속한 교회나 종교는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훌륭하다. 아니면 어떤 교회의 교인 자격을 갖든지 안 갖든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고수할지도 모른다. 선함과 선행을 행하는 한,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들은 성경의 기초가 부족하고 사도적 가르침에 반대한다. 사람이 선행을 해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통속적인 생각은 노골적으로 거짓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 기독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은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로마서 7:18 Good News Bible)

인간의 무능력 선을 행한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한을 원할수 있지만 할수 없다.  사도 바울은 이유를 설명했다:

 나의 [a]내적 존재는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지만
내 육체에는 또 다른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과 싸워서 나를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죄의 종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마서 7:22–23 )

아담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고 죄악이 그를 지배하도록 허락해 왔다. 인간의 본성은 약해지고 죄악의 노예가 되었다. 의인도 이 감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혜로운 솔로몬 왕은 “지상에는 옳은 일을 하고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없다”고 증명한다 (전도서 7:20 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 한국어로 번역했다). 사람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불륜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아무리 조심스럽다고 해도, 그는 실수나 유혹의 희생물이 되고, 합법적인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을 게을리 한다.

그러므로 그는 죄를 짓는다 (요한일서 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인간의 기준으로는 의롭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그렇지 않다 (로마서 3:10-12, 23; 베드로전서 2:21-22). 그러므로 죄인의 온 세상이 하나님의 정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려는 것입니다.”(로마서 3:19 Good News Bible)

하나님의 평결은 심판의 날에 불로 모든 죄 많은 사람들을 멸망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7,10). 인간의 친절한과 선행은 그의 구원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하나님께서 그에게 빚이 많은 같을 것이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로마서 4:4)

구원은 은혜에 의한 것이지 빚을 갚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선행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구원을 빚지지 않으신다.  반대로 하나님에게 빚진 것은 인간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의로운 사람일지라도, 인간은 여전히 죽음을 통해 갚아야 할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6:23). 불의 호수에서 벌을 받을 것이다. 두 번째 죽음이다 (요한계시록 20:14).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

그러나 선함이 헛되이 심판의 날이 올 뿐이니, 그 누구도 선함을 버리고 악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좋은 특성과 작업들은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회에.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인간의 참된 상태에 대한 인식은 그가 신에게 명예를 가져다 주는 좋은 작업들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콜로세서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가 그것을 발견한 것을 축복받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했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로새서 1:10)

사도 바울의 고무적인 말을 보면, 인간이 모든 좋은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그러나 그는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한 사도 아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좋은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성과적으로 해야 할 좋은 작업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오는 의의 열매를 가득 채우라 –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을 위하여”고 가르치면서 이것에도 빛을 주었다 (빌리보서 1:11 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 한국어로 번역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가져다 주는 작업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행할 수 있는 의의 열매다. 이것들이 작업들은 인간의 설계로만 잉태으로써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정지으신(사전 계획) 좋은 작업들’이다 (에베서소 2:10 Amplified Bible; 디도서 3:5).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따르는 것의 중요성과 그 안에 존재하는 관계를 더욱 보여주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4–5).

포도나무에서 분리된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된 사람도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고, 그의 백성은 그의 나뭇가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백성만이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이 어떻게 그의 가지가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5:16 NIV에서 한국어로 번역했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주와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해서 그가 이미 그리스도에 속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선택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예수께서 아버지께 섬기라고 임명하신 그리스도의 백성을 한 몸, 즉 교회로 불러들였다 (데살로니가후서 2:14; 골로새서 3:15; 1:18). 그리스도는 덩굴이고 또한 몸의 머리다. 그리고 나뭇가지라고도 불리는 그의 선택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맴버들이다. (고린도전서 12:27; 로마서 16:16)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맴버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 교회의 맴버이 지금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의로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에베소서 5:31-32 AMP). 반면에 그리스도의 교회 밖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봉사는 열정과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행해지는 운동이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이나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부가 아니면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만

사람의 좋은 작업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을 때만 하나님께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의 좋은 작업이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그의 영혼을 신성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요한복음 17:17; 로마서 7:12). 그 사람은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기 자신에게 바칠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이다 (에베소서 5:26–27).

주 하나님은 그리스도 교회 신도들이 그에게 행하는 예배와 서비스를 크게 중시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4, 7 GNB).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들은 죄악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리스도는 이미 그들의 죄값을 치렀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났다. 죄악의 노예가 되는 것에서 하나님의 눈에서 의로운 일을 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변한다. 많은 사람의 믿음과는 반대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은 아니었다 –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만. 사도 바울은 교회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할 때 이 점을 지적했다:

자기 자신과 양떼를 잘 돌보세요. 왜냐하면 성령이 당신을 감독사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의 피로 사들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20:28 Lamsa 번역)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야만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로 이득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마지막 날들 하나님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오직 교회만을 위한 것이다 (에베소서 5:24).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외부인은 그의 몸의 일원이 아니므로 그리스도는 그들의 죄에 대하여 대답할 수 없다. 그들은 두 번째 죽음을 궁극의 형벌로 삼아 자신의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들은 두 번째 죽음을 궁극의 형벌로 삼아 자신의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어떤 좋은 작업이라도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사도적 선언의 뜻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화나게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진리다. 그러나 고통과 원망은 그리스도와 함께해야 할 욕구가 오직 그의 교회인 Iglesia Ni Cristo 회원 자격 것을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고 이해하고 믿게 될 사람에게서 분명히 도망칠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그릇된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1) 교회 회원 자격은 불필요하다(어떤 교회에도 가입하는 것은 하지만, 진정한 교회에 가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좋은 작업을 하는 한 어떤 교회나 종교에 가입함으로써 구원받을 것이다 (오직 하나뿐인 참된 교회에서만이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원의 가치가 있다).

이 진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높은 경의는 Iglesia Ni Cristo의 참된 구성원들이 그들의 모든 방식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들이다. 이들은 예배 서비스에 전념하고, 선교 등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적극적이다. 그들은 또한 교화 활동, 기도의 집  청소고 보호 적극적이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이 회원 상태에 머물면 주님이 돌아오시는 영광스러운 날에 구원과 부활을 확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런 좋은 작업을 하는 데 지치지 않는다.

이 기사는 Pasugo: 하나님의 메시지 잡지, 에 원래 실렸다.